양평 세미원 "물과 꽃의 정원"
  날짜 : 14-02-27 10:18     조회 : 10946    

버려진 강변 습지 연꽃정원으로 가꾼 아름다운 손길

한겨레뉴스. 2013년 8월8일

양평 두물머리에는 ‘물과 꽃의 정원’ 세미원이 있다. 최근 세한정과 전통 배다리가 준공되면서 10년에 걸친 프로젝트가 완성됐다.

5만평에 이르는 아름다운 연꽃밭은 입소문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한해 관람객이 25만명에 이른다.

지난 1일 저녁 7시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세미원. 최근 이곳에 들어선 세한정 뜰에서 서울 마리아수녀회 꿈나무마을 알로이시오초등학교 졸업반 정원빈(13)군 등 어린이 60여명이 펼치는 사은례가 열렸다. 아이들은 유건에 도포 차림으로 집사의 구령에 맞춰 스승들에게 연잎차를 올린 다음, 앞에서 헌가를 부르고 헌무를 췄다. 스승의 은혜를 기리고, 사제의 정을 잊지 말자는 의식이다. 전통의상 차림 어린이들은 의례를 치르면서 전통의 묵직함에 빠져들며 점점 어른스러워지는 듯했다.

이날 행사는 세미원 안에 새로 지은 세한정 준공식을 겸하는 것었다. 추사 김정희의 걸작 <세한도> 속 정자를 5칸 한옥으로 재현한 집이다.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는 <논어> 글귀에서 이름을 딴 <세한도>는 제주에 유배당한 추사가 어려운 시절에도 사제의 도를 다한 이언적한테 그려준 그림이다. 추사는 ‘장무상망’(長無相忘) 곧 ‘영원토록 서로를 잊지 말자’는 낙관을 찍었다. 세한정 뜰에도 <세한도> 속 나무와 빼닮은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었고, 담벼락에 ‘영원토록 우리 서로 잊지 말자’는 글씨를 박았다. 앞으로 세한정에선 이날처럼 사은례나 다문화 가정의 혼례, 실향민·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명절 다례 등의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세한정이 있는 세미원은 양평 두물머리 습지에 조성된 ‘물과 꽃의 정원’이다. 세미원이 생긴 것은 2003년. 최근 세한정이 준공되면서 이 정원은 꼭 10년 만에 최종적으로 완성됐다. 이훈석이라는 인물와 그의 10년에 걸친 맹세와 약속을 열렬히 지원한 수십명의 후원자가 함께 이뤄낸 아름다운 별천지다. 5만평에 이르는 이곳은 수도권 최대의 연밭이기도 하다. 놀라운 경치가 입소문으로 전해지면서 알음알음 찾아오는 이들이 한해 25만명에 이른다.

상수원보호구역인 이곳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거주는 물론 일체의 경작이 금지된 채 철조망 속에서 방치된 땅이었다. 보호구역 지정 전, 주민이 일구던 밭은 잡초가 우거지고 묵정논은 습지로 변해 수생식물이 무성했다. 버려진 그곳의 가치를 발견하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든 이가 지금 세미원 이사인 이훈석(68)씨다.

성균관 숭례원장을 지낸 그는 1973년 한국 최초의 노인대학(덕명의숙)을 설립·운영했고, 김치박물관을 열기도 했으며, 결식아동을 지원하는 곰곰이학당 등을 만들어 전통 교육과 계승에 힘써 왔다. 그가 관심을 갖고 있던 또 한 가지가 수생식물이었다. 2000년부터 3년에 걸쳐 수생식물 전시회와 수생식물 관련 심포지엄을 열면서 연밭의 환경 정화 가능성에 주목하게 됐다. 머리띠를 두르고 집회를 하는 환경운동 대신 삽과 호미를 들고 현장으로 가야 한다는 서영훈 우리문화가꾸기회 이사장의 지론에 공감한 그는 이를 실행에 옮길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당시 손학규 경기지사의 권유로 두물머리 습지를 돌아본 그는 자기 뜻을 펼칠 장소임을 직감했다. 2003년 경기도에서 27억원을 지원받아 철조망을 걷어내고 1차로 5000평의 연밭을 일궜다. 아파트 한채 값으로 조성한 정원을 본 후임 김문수 지사가 “참다운 것을 만들어보자”며 지금까지 모두 150억원을 지원했다. 김남조 시인, 한승원 변호사, 강지원 변호사, 지영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등 유명인사들이 후원자로 나섰다.

난관도 많았다. 초기에 “하천부지를 불법으로 일군다”는 민원이 나와 감사원 감사도 받았다. 하지만 오히려 감사에서 한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못할 성과를 냈다는 보증이 되어 전화위복이 됐다. 세미원의 환경보존과 교육효과에 공감한 국토해양부, 환경부는 감시 기관에서 지원 기관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한해 5000여평씩 10년에 걸쳐 5만5000평의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됐다.

세미원(洗美苑)은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성현의 말 ‘관수세심(觀水洗心) 관화미심(觀花美心)’에서 이름을 땄다. 이름 뜻처럼 정원을 일구고 연꽃박물관, 수련전시관, 검은잉어연못과 장독대분수, 유상곡수 등 다양한 수경공간을 마련했다. 여러 연못에는 80여종의 연과 갖가지 자생식물을 심어 한국식 정원으로 꾸몄다. 한반도 모양을 축소해 만든 ‘국사원’은 국토의 경계를 가장 넓혔던 광개토대왕,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해 나라의 운명을 생각하며 통곡한 선조, 기개를 떨친 남이 장군, 우정을 중시했던 신라의 화랑을 기리는 곳이다. 장독 365개로 만든 장독대 분수는 오염된 한강물을 끌어올려 정화해 한강으로 다시 돌려보낸다. 분수 한가운데는 365일 자녀를 눈물로 걱정하는 어머니를 빼닮은 엄마바위가 우뚝하다. 세계적 연꽃연구가 페리 슬로컴을 기리는 페리 기념 연못도 있다. 조부모-부모-손자녀 등 3대로 이뤄진 관람객이 오면 순회차량을 무료로 태워준다. 환경정화 효과도 뚜렷하다. 2008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조사를 보면 한강물은 1분당 40리터씩 세미원에 들어와 습지를 거치면서 암모니아성 질소는 0.6ppm에서 0.2ppm, 질산성 질소는 1.0ppm에서 0.2ppm으로, 인산성 인은 0.4ppm에서 0.1ppm으로 정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산이 변하는 동안, 정말로 완전한 경관으로 거듭난 세미원은 세한정 준공에 앞서 또 하나의 명물을 완성했다. ‘열수주교’라는 배다리다. 정조가 수원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 현릉원을 참배하러 갈 때 한강에 띄웠던 배다리를 재현했다. 나룻배 40척을 띄우고 그 위에 널판을 얹어 만든 100m 배다리는 정조의 효심과 배다리 설계에 참여한 정약용의 학덕을 기리는 의미다. 이 배다리를 건너면 상춘원이란 구역으로 이어진다. 상춘원에는 조선시대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그린 그림 <동궐도>에 나오는 궁중 온실 청순루, 세종 때 만들었다는 최초의 온실, 이규보가 설계한 ‘이동식 정자’인 사륜정, 정선의 그림 속 금강산이 석가산으로 재현돼 있다.

이제 세미원은 ‘굴뚝 없는 공장’으로 불린다. 처음 외지인이 특혜를 받아 양평에 들어온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지만 주민들도 차츰 이훈석 이사의 뜻을 이해했고, 지금은 주민 수십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한편 평일 3000여명, 성수기인 7~8월에는 7000여명이 매일 이곳에 들르고 있다. 최근에는 상춘원 뜰에 지역농산물 매장을 운영해 주민들이 재배한 유기농산물을 팔고 있다.

어린이들이 사은례를 준비하는 동안 세한정 앞에 가위를 든 명사들이 테이프 앞에 도열했다. 사진 찍기를 꺼리는 이훈석 이사는 이 자리에도 빠지고 다른 사람들 챙기기에 바빴다. 이날 아침부터 그는 세미원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주웠다. 양평/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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